'명료함'을 읽고
탁민 오의 '명료함'을 읽음
나는 말을 썩 잘하지 못한다. 말뿐 아니라 글로든, 머릿속에 있는 것을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옮기는 일 전반이 서툴다. 좋은 전달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채 5년이 안 된다.
내가 이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두 가지다. 첫째,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다. 여러 잡념이 끊임없이 맴돌고, 이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시간 이상을 정리에 들여야 한다. 그래서 발표를 하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늘 많은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.
둘째, 그러다 보니 표현함에 있어 직관에 기대는 것이 익숙해졌다.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 자체가 버거우니, 그 과정을 건너뛰고 직관에 의존해 의사를 표현하는 쪽을 택해온 것이다. 이런 이유들로, 내가 겪어온 말하기의 경험은 좋지 않은 피드백이 더 많았다. 그럼에도 사회생활에서 이런저런 역할을 맡으면서 나름의 노력은 해왔다. 발음과 발성 교정, 발표 전 대본 쓰기,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 등..
작년에 한 시니어 멘토에게 이력서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.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받은 피드백을 통해 느낀 것은, 내 글이 독자에게 피상적으로 읽힌다는 것이었다. 다시 돌아본 내 글들은 대부분 추상에 머물러 있었다. 내가 아무리 생각을 깊이 했더라도, 추상에 머문 표현은 그 깊이와 무관하게 독자에겐 피상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. 문제는 생각의 얕음이 아니라 전달의 모호함이었던 셈이다. 그 후로 표현에 답답함을 느낄 때나 내 생각이 잘 전해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그 피드백을 떠올리며, 생각을 구체화해 전달하려 노력한다. 이것이 근 1~2년간 나에게 자리 잡은 가장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.
'명료함'을 읽으며, 이 일련의 과정에 조금 더 정확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. 그동안 막연히 '구체적으로 쓰자', '피상적으로 끝내지 말자'고 부르던 것이 실은 명료함을 향한 노력이었다.
AI가 빠르게 많은 텍스트를 쏟아내는, 엔트로피가 높은 시대다. 그럴수록 명료함은 놓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. 명료하게 전달하기 이전에 나 자신부터 또렷한 해상도를 갖춘 사람이 되자는 생각으로 .. 마무리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