'스타트 위드 와이' 감상문

스타트 위드 와이를 읽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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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에서 말하는 이상과 내가 직면한 현실은 과연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. 책을 다 읽고, 내가 겪고 있는 세상을 대입하며 든 질문이다.

어렵지 않게 도출된 생각은 ‘What은 오히려 쉬워지고 있지 않나’였다. 작업물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, 무엇인가를 빠르게 만들어내기에는 좋은 세상인 것 같다. 갈수록 생산력은 올라가고, 생산물과 그 기반을 만드는 기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것들을 쏟아낸다. 그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,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기업이나 브랜드의 Why보다는 눈앞의 What을 좇기에 바빠진다는 생각이 든다. 저자는 Why가 인간의 본능적인 판단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. 그 영향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. 다만 우리가 접하는 What의 속도와 양이, 그 본능이 작동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.

한편으로, What이 쉬워졌다면 누구나 What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. 실제로 체감하고 있다. AI의 보급으로 나 개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What의 품질과 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.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일 자체는 더 이상 소수의 능력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. 문제는, 그렇게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 과연 나를 설명해주는가 하는 지점이다.

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면, 생산물의 수나 속도는 더 이상 차별점이 되기 어렵다. 그렇다면 무엇이 남을까. 아마도 그 생산을 떠받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. 명확한 Why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, 우리는 그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남지 않을까. 그렇게 쌓인 What들 사이에서 정작 나는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.

저자의 의견처럼 Why로 시작하지 않은 What은 Why로 시작된 What에 비해 피상적인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. 물론 피상적인 결과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고, Why 없이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사례는 분명히 존재한다. Why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. 그러나 선택지가 과잉인 시대에는, 무엇을 더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. 우리는 모든 생산물을 소비할 수도 없고, 모든 방향을 따라갈 수도 없다.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복잡도를 누군가가 통제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. 다만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기에, 선택의 기준이 되는 Why를 각자가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. 어쩌면 Why는 더 나은 생산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, 과잉의 시대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경계선일지도 모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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